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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하다. MRO기업과의 지분관계가 없는 구매업체의 입장에서는 MRO업체를 이용하여 기업운영자재를 구입함으로써 비용절감부분에 지대한 효과를 얻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귀결된다(본문의 밑줄 내용 참조). 그러나 대그룹의 자회사 개념으로 MRO기업을 설립하여 해당 자재를 구매할 경우, 그 효과가 얼마나 클지 의문스럽다. 계열사 MRO를 설립, 운영하는데 투입되는 비용 등을 고려해 볼 때 본전치기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KeP처럼 그룹 물량이 25%정도 밖에 차지 하지 않는 이유는 그 회사의 태생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LG의 서브원, 포스코의 엔투비 처럼 그룹사의 업무 영역 중 일부분을 떼내어 설립된 케이스가 아니다. KeP는 코오롱과 몇몇 업체가 컨소시움 형식으로 설립된 회사이기 때문에 그룹 물량의 확대는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MRO기업에 적합한 자질은 대인기술이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 실력도 뛰어나야 한다. MRO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은 구매담당자로서의 능력과 함께 영업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뛰어난 프리젠테이션 능력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업무라 생각한다.



불황에도 기회는 있게 마련이다. 혹은 불황이 특히 기회가 되는 업종도 있게 마련이다. MRO(잠깐용어 참조)업계가 그렇다. MRO업계는 올해 업체별로 20~30%의 고성장을 기대한다. 내년에도 올해만큼은 아니겠지만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뿐 아니다. 새로운 틈새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영업 확대를 위해 인원을 늘리거나, 올해의 좋은 실적을 바탕으로 기업공개(IPO)를 계획하는 업체도 있다.


매출 급등 현황

국내 10대 그룹에 속하는 A그룹 총수는 최근 전 계열사에 MRO 관련 아이템으로 추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현재 한 MRO 업체에 간단한 사무용품 정도만 구매대행을 의뢰하고 있는 A그룹은 보고서가 완료된 이후, 아이템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사용하는 안전용품, 전기자재, 공구는 물론 연구소에서 필요한 실험기자재, 각종 화학용품, 포장재 등이다. 심지어 전단, 안내서(브로셔), 기안용지, 봉투 등을 각각 따로따로 인쇄하던 데서 벗어나 인쇄도 MRO 업체에 통째로 맡길 계획이다.

역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 B사는 새로 구매대행을 시작하기 위해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한 컨설팅 업체로부터 받은 전략구매컨설팅의 결과라는 설명. ‘MRO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는 컨설팅 내용에 경영진이 MRO를 통한 구매를 추진했다. B사 구매팀 관계자“새로운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만큼 구매 담당자로서는 불편해지긴 하겠지만, 비용 절감이라는 전사적 목표 앞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사정을 전했다.

MRO업계 2위 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는 11월 초, 중부사업팀과 남부사업팀이라는 신규 조직을 출범시켰다.

충청권과 경상·전라권 기업을 공략하기 위한 전초기지. 수도권 기업을 넘어 지방 중소기업들도 고객으로 신규 편입시킬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판단에서다. 기존 인력을 분산 배치시킨 것으로 모자라 조만간 신규사업팀에 배치할 20여명의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총 직원 수 150명인 회사 규모를 감안할 때 상당히 공격적인 영업력 강화인 셈이다. 그뿐 아니다. 현만영 아이마켓코리아 사장은 “요즘 새로운 틈새시장이 계속 발굴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우선 환율효과. 현 사장은 “환율이 급등하면서 글로벌소싱을 하는 외국 기업이라며 연락 온 곳이 꽤 많다. 11월 들어서만도 5곳이 넘는다. 예전엔 없던 일”이라고 귀띔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국 물건을 사가려는 외국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국내 MRO 업체에 의뢰해 물건을 사는 게 훨씬 안전하겠다 판단하고 상담을 제의해온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그동안 물건 납품업체로만 존재했던 제조기업들이 새로운 고객사로 영입되고 있어서다. 제조기업들도 원가 절감을 해야 하는 상황. 현 사장은 제조기업 5~6개를 묶어 공동구매를 하면 구매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고 업체들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고객사로 등록했다.

덕분에 아이마켓코리아는 지난 10월 최초로 월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아이마켓코리아는 11월에도 사상 최고 매출액을 기대하는 중이다.

아이마켓코리아뿐 아니다.

업계 1위 서브원은 올해 1조5000억원의 매출액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매출액 1조2058억원보다 무려 3000억원이 늘어난 수치다. 3위 업체 엔투비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지난해 5700억원에서 1500억원이 늘어난 7200억원이다.

4위 KeP(코리아이플랫폼)는 지난해 2661억원에서 30% 이상 증가한 3473억원의 매출액 달성이 유력시된다. KeP는 이 실적을 바탕으로 내년 증시에 상장한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왜 인기 끄나

업계 전문가들은 ‘최근의 MRO 붐은 당연한 결과’라고 자평한다. 트렌드 자체가 MRO가 활성화되는 체제로 가는 데다, 경기불황은 MRO업계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는 얘기다.


국내에 MRO 기업이 첫 선을 보인 시기는 지난 99년이다. 당시만 해도 MRO가 과연 되겠느냐는 인식이 팽배했다. 기업 돈줄을 잡고 있는 구매 담당자들이 자신의 업무를 나눠줄 리 만무하다는 논리가 근거였다.

이와 관련 포스코 계열 MRO 업체인 엔투비의 김봉관 사장은 “초기에 포스코 내부에서조차 ‘정치권과 연결된 인물이 하겠다고 나섰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포스코가 MRO 기업을 설립해 구매대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설 필요가 있겠느냐는 논리였다.

실제 각 기업 구매 담당자들 반발도 거셌다. 요즘은 정반대다. 기업 투명성을 강조하는 시대인 만큼 구매도 인터넷으로 투명하게 하자는 데 다들 공감한다.

요즘은 구매 담당자가 무슨 MRO냐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인물이라고 오히려 비난받을 정도가 됐다. 트렌드가 이러니, 이 같은 트렌드에 동참하고자 하는 기업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한편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기업들이 비용 절감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MRO업계가 뜨는 것은 바로 이 비용 절감과 관련이 깊다. 어떻게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 궁리하던 기업들이 보다 손쉽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으로 MRO 업체를 찾는다는 의미다.

미국 구매전문가협회는 MRO를 활용할 경우 31%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먼저 제품 구입비용이 줄어든다. MRO 업체가 여러 업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한꺼번에 모아 주문하는 만큼 구매력이 커져 보다 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관리비용도 줄어든다.

아이마켓코리아는 MRO를 활용할 경우 구매 과정이 평균 25단계에서 7단계로 줄어든다고 집계한다. 김봉관 사장은 “KT의 경우 하루에 3000건씩 주문을 한다. 한 달 20일이라고 하면 6만건이다. 6만건을 일일이 관리하고 세금계산서를 발생시킨다고 생각해보라. 엔투비를 이용하면 한 달에 세금계산서 2건으로 끝”이라며 간편성을 강조했다.

미국 구매전문가협회는 관리비용이 30%에서 8%로 대폭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 재고비용도 줄어든다.


빅플레이어는 누구?

현재 MRO업계는 빅4와 중소업체들로 구성돼 있다. 빅4는 모두 대기업 계열사들. 그룹 물량을 기반으로 덩치를 키운 뒤 일반 기업 대상 영업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위 서브원은 LG, 2위 아이마켓코리아는 삼성, 3위 엔투비는 포스코와 KT, 4위 KeP는 코오롱이 각각 대주주다.

이 중 특히 눈에 띄는 업체는 빅4에서 그룹 물량 의존도가 제일 낮은 것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KeP다.

다른 업체들의 그룹 물량 비중은 80~ 90%에 달하는 반면 KeP는 25%에 불과하다. 대신 두산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동부하이텍, 하이닉스 등 다양한 기업을 고객사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잠깐용어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기업에서 생산과 관련된 원자재를 제외한 모든 소모성 자재를 가리킨다. 기업소모성자재 또는 기업운영자재라고도 한다. 필기구부터 복사용지·프린터 토너 등의 사무용품이 대표적이며, 청소용품과 각종 설비나 장비를 정비하는 데 사용하는 공구, 기계부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러한 소모성 자재는 일반 기업들이 관리하려면 비용과 인력의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에 대행업체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대행하는 전문업체를 MRO 기업이라 한다.

[김소연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84호(08.12.10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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