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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준 미래메탈테크(주) 대표 

수출인큐베이터에서 직수출 꿈 이뤘죠

미래메탈테크(주)는 자동차 부품을 냉간단조 및 정밀가공 방식으로 생산하는 기업으로, 2004년 9월 시카고수출인큐베이터에 입주하여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기업 가운데 하나다. 현지 마케팅을 통해 독일 ZF사 납품에 이어 2006년에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1차 협력업체 메탈다인(Metaldyne)사와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가 직수출에 성공을 거두기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박해준 대표가 그 사연 많은 성공스토리를 전한다. 

글 - 박해준 미래메탈테크(주) 대표  정리 - 박창수 전문기자



Monolog1_어두운 그림자

로컬수출 진행하다 한순간에 날벼락 맞다

그때가 1999년 중반이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회사의 계열사에 협력업체들이 납품 때문에 들어가려면 그 회사에서 생산한 차를 타고 들어가야만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어느 날 은행에 갔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대우자동차 계열사 어음을 할인하러 가면 은행에서 담보 없이 우대어음으로 할인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할인에 담보를 요구하고 종전과 같이 처리해주지 않았다. 

당시 우리 회사는 연매출 40억 원을 올리는 자동차부품 냉간단조 전문업체로 90% 이상을 대우차 계열사에 납품하고 있었다. 어음할인 건으로 ‘언제까지 한 회사만 믿고 살아가야 하나?’에 대해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매출 다변화전략이었다. 내수 위주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을 뚫고 자동차만이 아니라 비자동차 시장에도 진출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비자동차 매출을 새로 늘려나갔고 미국 수출을 대행해줄 국내 세일즈 랩을 찾아 나섰다. 이에 따라 2000년부터는 GMT360프로젝트 ‘볼 조인트’를 가공하여 세일즈 랩를 통해 미국 델파이사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연간 250만 달러 규모였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매출처가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나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대우차는 그해 11월 최종부도를 내고 말았다. 미리 빠져나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델파이사에 납품하면서 문제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국내 세일즈 랩-미국 세일즈 랩-델파이사 이렇게 3단계의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다보니 실단가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2003년까지 거래가 계속된 것은 당시 환율이 높아 회사로서는 손해가 없었고 매출규모가 70억 원대로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나 할까? 2003년 겨울 어느 날 갑자기 델파이사로의 납품 요청 수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당시 델파이의 고객인 GM에게 모 업체가 바로 공급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그리하여 델파이가 사업을 잃어버렸으니 자연스럽게 델파이 공급업체인 우리도 사업을 잃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GM에 바로 공급계약을 한 업체는 국내업체였다.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국내에서는 철강가격이 상승하면서 제조업계에 초비상이 걸렸고, 그해 말 델파이사도 부도가 나서 물품 대금 3억 원을 받지 못했다. 복합적인 사고가 터진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Monolog2 _직접 찾아 나서기

시장개척단 활동 중 수출인큐베이터 발견

그해 11월, 12월 두 달 동안은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델파이 사업이 중단된 후 갑작스러운 회사 매출 감소와 유휴설비 미가동이 골칫거리였다. 새로운 전략을 짜내야만 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로컬수출, 이건 아니다. 직수출망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4년 1월 중순경 우연히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2004년 KOTRA 해외시장개척단 모집’이 그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해외영업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볼 때 사람을 키워야겠다고 판단해 20대 중반인 기획실 직원 한 명을 개척단으로 보내기로 했다. 

직원이 시장개척단을 통해 미국 자동차부품 시장 정보를 얻어왔으며, 개척단 일정 중 하나로 재미 자동차산업 종사자들의 모임인 KPAI에 가서 미국 3대 자동차업체(GM, DCX, Ford)와 부품업체에서 근무하는 한국계 직원을 소개받고 명함을 받아왔다. 나중에 이것이 미국 시장개척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개척단으로 미국을 다녀온 직원은 해외 영업업무에 잘 적응해나갔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주관하는 ‘해외시장개척요원모집’ 정보를 알게 되었다. 개척단을 다녀온 직원을 다시 개척요원으로 보내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운영 중인 시카고수출인큐베이터에서 머물면서 4월부터 9월까지 시장개척 활동을 했다. 이 기간에 수출인큐베이터 사업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개척요원 파견 기간이 끝나자 우리는 곧장 시카고수출인큐베이터 사업을 신청하였다.


Monolog3_ 시카고 중진공 수출인큐베이터

수출인큐베이터에 입주, 마케팅과 전시회 활동 벌이다

중진공의 시카고수출인큐베이터는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인큐베이터 내의 13m²(4평) 남짓한 사무실은 업무를 보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임대료의 80%를 중진공이 부담하기 때문에 월 10만 원 정도의 공동경비와 나머지 20%의 임대료(10만 원 미만)만 내면 그 이상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프린터, 복사기, 팩스 등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다 현지에 파견된 중진공 직원들과 중진공이 고용한 현지 자문위원을 통해 현지에서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자문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뒤 직원은 처음 4개월간 현지 정착을 위해 준비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현지 분위기 파악에 들어갔다. 200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직수출 라인을 찾아 나섰다. 자동차부품 회사에 재직 중인 재미교포들을 만나 1차 벤더들의 부품구매정보를 알아보고 관계 직원을 소개받았다. 또 마케팅조사를 실시하고 중진공이 추천하고 도와주는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그중에서도 2005년 3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SAE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부품 전시회로, 이때 직접 부스를 설치하여 참가했다. 돈이야 당연히 들어갔지만 현지 업체들에게 우리 회사를 알리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 후로도 직원은 더욱 열심히 뛰었다. 오죽하면 승용차로 2년 동안 16만 킬로미터를 달렸을 정도다.


Monolog4_ 직수출 문을 열다

진출 1년 반 만에 독일계 ZF사와 직수출 계약

2005년이 5월이 되자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운 소식이 들려왔다. 2005년 3월 디트로이트 ‘SAE쇼’ 당시 부스를 찾아와 상담했던, 켄터키 주에 있는 독일계 회사인 ZF사 구매담당자가 상담을 의뢰한 것이다. 

곧장 켄터키 주로 달려간 직원은 담당자에게 2006년부터 양산되는 포드 SUV에 들어가는 부품을 납품할 마땅한 회사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우리 회사와는 그야말로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에 두 회사 사이에 긴밀한 협력체계가 구축되고 그해 10월 ZF독일본사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 직접공급업체심사(Supplier Audit)를 나왔다. 그때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감회가 깊었다. 외국회사가 그것도 자동차업계 유명회사가 직접수출계약을 위한 감사로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직수출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감사를 나오기 전까지는 무려 5개월에 걸쳐 현지에서 1차 담당자 미팅→2차 가격협상→3차 기술 미팅 등을 거쳐야만 했다. 공급업체심사가 문제없이 끝난 후 그해 11월 우리는 ZF사와 연간 15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14억 원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세일즈 랩 없이 직수출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했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더 큰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 출처 ] 중소기업 웹진 - 기업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