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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소양

자격증 달인

레이먼 2008. 12. 9. 12:15
직장인이 좋다

불안의 계절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조마조마한 건 직장인이다. 행여 구조조정 바람에 쓸려갈지 모른다는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당당히 내밀 수 있는 자격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자기계발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업무를 훌륭히 수행하면서 열심히 공부해 신(神)의 경지에 오른 이른바 직장인 '공신(工神)' 3명을 '김 과장 & 이 대리팀'이 만나 비결을 들었다.

자격증의 달인들이 "직장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결국 자기하기 나름"이라며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문헌교 차장, 김윤정 대리, 김성수 심사전문관.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1.만나보니 '김 과장 이 대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들 손에는 자격증이 엄청나다. 3명 합쳐 25개다. '혁신상''고객감동상' 등 각종 사내 포상도 수두룩하다. 타고난 부지런쟁이들일까,아니면 가족을 팽개쳐 둔 채 일이나 공부와 결혼한 사람들일까.

◆김윤정 국민은행 대리(34)=금융상담 일을 하고 있는 은행원이다. 남편과 시어머니,4살 배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이기도 하다. 두 가지 일을 하면서 2000년부터 금융과 관련된 자격증 네 개를 땄다.

◆김성수 서울세관 심사전문관(44)=1986년 세무대학을 졸업하고 22년째 세관에서 일하고 있다. 딸 셋을 둔 딸 부잣집 아빠다. 자격증은 8개 정도 갖고 있다. 일본어 등 대부분 어학과 무역에 관한 것들이다.

문헌규 LG화학 차장(38)=딸 둘과 아내가 있는 평범한 아빠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1996년쯤 정보기술(IT) 열풍이 불어 IT 연관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약간 '서민적인' 자격증을 포함해 13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게 됐다.


#2.결국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얘기다. 그래 김 과장 이 대리도 자격증을 따보겠다고 작정한 적이 있다. 다만 끝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더욱이 사내공부와 사내연애는 닮았다. 공개하자니 이후의 '결과'가 두렵다. 숨기자니 눈을 피하는 게 여간 힘들지 않다. 이들 공신은 과연 어떤 계기로 공부와 연애를 하게 됐을까.

◆김 전문관= 1989년 울산 옆에 있는 온산으로 발령이 났다. 공해가 너무 심했다.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어학교육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게 유일한 탈출 방법이었다. 외국어대의 20주짜리 몰입교육에 등록했다. 고3 때보다 더 미친 듯이 공부했다. 그 때부터 공무원 어학교육에 무조건 지원했다. 자연스럽게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에 능통한 어학 전문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 대리=은행원이 됐는데 금융지식에 관한 자격증 몇 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고객들로부터 세금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두 번째 질문부터는 항상 막혔다. 그래서 종합재무설계사(AFPK) 등을 차례로 땄다. 시간이 걸리는 세무사 자격증은 출산휴가를 이용해 취득했다.

◆문 차장=엉뚱할지 모르지만 초등학생들 때문이다. 2002년 자격증 7개를 딴 초등학생이 있다는 기사를 봤다.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초등학생들과 함께 치른 워드프로세서 2급 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그 순간을 잊고 싶어 공부에 몰두하는 습관이 이 때부터 생겼다.

#3.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월급쟁이하면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업무시간은 물론이거니와 회식자리도 빠지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어떤 노하우가 있길래 이런 일을 해냈을까.

◆김 대리=출산휴가 중에 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독서실에서 세무사 시험 준비를 했다. 애를 떼놓고 시험준비를 하는 게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시험에 붙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지금도 그런 정신자세를 잃지 않으려 한다. 매일 평균 2시간씩 공부한다. 물론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문 차장=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회식을 해도 남는 시간이 분명히 있다. 매번 2차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1차만 가고 돌아오면 하루 3시간 정도 공부할 수 있다. 경조사도 마찬가지다. 상가엔 가고 있지만, 결혼식의 경우 가지 않고 축의금만 보냈더니 더 좋아하더라(웃음).환경보다는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 전문관=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게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의 취미를 아예 공부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국비로 2년간 일본에 유학하는 자격을 얻었다. 이때부터 가족 모두가 공부하는 재미에 빠졌다. 아내 및 첫째딸과 같은 교실에서 일본어자격시험을 봐서 합격하기도 했다. 공부시간을 확보하려면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매일 5시30분께 일어나고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든다. 고3 때보다 수면시간이 적은 것 같다.

#4.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다. 한 개 얻으면 두 개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다른 누구보다 욕심많은 '공신'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만큼 앞으로 더 하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김 대리=자격증은 한정된 지식을 측정하는 수단일 뿐이다. 깊이마저 채워주는건 아니다. 깊이를 채우기 위해 세법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싶다. 친정 식구들뿐만 아니라 별로 친하지 않았던 주위 사람들에게 세금문제에 대해 자문해주면 너무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어 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다.

◆김 전문관= 한국이 일본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머지않아 그 쪽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일본어 동시통역사를 준비하고 있다.

◆문 차장=보안 쪽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어 국제공인정보시스템감사사(CISA)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에서 별명이 '문 박사'다. 이에 걸맞게 경제학 박사 학위도 따고 싶다. 초등학생 때부터 피아노를 쳐왔는데 조만간 콘서트를 열거나 음반을 내고 싶다.


#5.역시 억척빼기들이다. 독종이라면 독종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최근 편안하다. 심심찮게 오가는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흘려 들을수 있다. 실력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덕분이다. 그런 만큼 일과 공부 둘다 잘하고 싶은 전국의 수많은 '김 과장과 이 대리'에게 던져주는 키워드가 있을 것 같다.

◆문 차장=실패를 즐겨라. 아무리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아름답다. 나는 대학입시 전기에서 떨어졌다. 합격률 90%인 대리 진급 시험에서도 미끄러졌다. 그래도 상황을 즐겼다. 좌절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김 대리=기회는 뒷머리가 없다. 반드시 앞머리를 잡아야 한다. 언젠가 기회가 다시 오겠거니 생각하지 말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김 전문관= 지금 안하면 죽는다는 생각을 갖고 임해야 한다. 이 약 안 먹으면 죽는다고 하면 다 털어넣지 않는가. 특히 어학의 경우 읽고 또 읽어 지문을 완전히 외워 봐라. 한 달이면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본과 영상이 머리 속에서 선명하게 결합되는 '짜릿한'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金과장&李대리 취재팀=하영춘(팀장)/이관우/이정호/정인설/이상은 기자 surisuri@hankyung.com